그리드를 채우기 위한
바람이 부는 오후, 창가에 앉아 아무 의미 없는 생각들을 이어 붙이다 보면 시간은 의외로 빠르게 흐른다. 특별한 목적도 없이 문장을 이어 나가는 일은 어쩌면 가장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작업일지도 모른다. 어떤 단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글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같은 내용을 반복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결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래서 의미 없는 글이라고 해도 완전히 무질서하게 흩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일정한 리듬을 가지며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문득 떠오른 단어 하나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확장해 나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예를 들어 ‘시간’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그에 연결된 수많은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시계 초침의 규칙적인 움직임, 해가 지고 다시 떠오르는 반복, 그리고 그 사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 같은 것들이다. 이처럼 하나의 단어는 또 다른 단어를 부르고, 그렇게 연결된 흐름은 어느새 하나의 문단을 완성한다.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글은 계속해서 만들어질 수 있다. 오히려 의미를 억지로 넣으려고 할 때 더 어색해질 때도 있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문장을 그대로 적어 내려가다 보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긴 글이 된다. 중요한 것은 완성도가 아니라 흐름이다.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이어가는 것, 그것이 이런 글을 작성하는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가끔은 같은 문장을 조금씩 변형해서 반복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비슷하지만 다른 표현을 사용하면서 문장의 길이를 늘릴 수 있고, 읽는 입장에서도 크게 부담 없이 지나갈 수 있다. 예를 들어 ‘이 글은 특별한 의미가 없다’라는 문장을 ‘이 문장은 특별한 목적 없이 작성되었다’라고 바꾸는 식이다. 내용은 크게 달라지지 않지만 분량은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또한, 특정한 주제를 정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가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다. 주제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어디로든 확장할 수 있고, 어떤 방향으로든 이어질 수 있다. 글의 중심이 없다는 점이 오히려 자유도를 높여주는 셈이다. 그래서 이런 유형의 글은 시작은 있어도 끝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결국 이런 글은 읽는 사람에게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단순히 공간을 채우기 위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나름의 구조와 흐름이 존재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아무 의미 없이 시작된 문장이 쌓이고 쌓여 하나의 형태를 이루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완전히 무의미하다고 말하기 어려워진다. 그렇게 만들어진 글은 그 자체로 하나의 결과물이 된다.